[특별기고]추석 명절과 고향에 대한 단상 woman8114@naver.com |
2022년 09월 08일(목) 1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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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고향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뼈가 자란 곳, 아직도 동백꽃이 피어 있는 나의 고향 해남입니다. 지금은 옛 친구도, 초가집도, 마을 앞 우물도, 소 몰고 가던 길도 없어지고, 유년시절의 흔적이 송두리 채 사라졌다 하더라도 고향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으로 다정다감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런 고향이 있기에 매년 명절 때마다 어김없이 그 머나먼 길을 마다하고 즐거움과 설렘으로 다녀간다.
나는 추석 1주일 전에 중형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소를 벌초한다. 매년 하게 되는 벌초지만 해가 다르게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벌초를 마치고 사초리 해변 식당에서 사촌들과 강진만을 바라보면서 점심을 먹으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나눈다.
코로나 19로 추석 명절은 자연스레 가족끼리 보낸다. 토요일에 파주에서 내려온 딸이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전을 만든다. 아들 내외와 딸이 전과 잡채를 좋아해 굴전, 새우전, 육전, 동그랑땡, 고추전을 지지고 모시 송편까지 빗는다. 아들 내외도 손녀와 함께 집에 온다. 아들 내외가 어린 손녀를 돌보며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더불어 행복감을 느낀다.
명절 아침에는 여행 가는 기분으로 가족 모두가 해남 고향 집을 향한다. 빈집으로 남아 있는 고향 집이지만 나에게는 항상 마음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성묘를 마치고 오던 길에 종가 댁에 들러 나이 드신 종부님과 인사하며 덕담을 나눈다.
이제는 추석의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고향 집에 내려가 어머님과 형제자매, 조카들까지 송편을 빗고 음식을 만들면서 웃음꽃 피웠던 시절이었다. 올벼 쌀로 햅밥을 지으며 대가족이 함께 모여 시끌벅적했던 추석에 성묘하러 내려오신 친척들과 혈육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광주에 계신 숙부님께서도 명절 때마다 아들 4형제와 함께 내려와 성묘를 하고 윷놀이를 한판 벌린 후에 올라가신다. 저녁에는 고향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며 고향의 정을 듬뿍 나눈다. 고향을 떠날 때마다 햇과일과 햇곡식을 풍성하게 넣어 주시고 마을 앞까지 배웅 나오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탓인가 고향에 내려가더라도 하루 이틀을 보내기가 어렵다.
내 나이 벌써 70을 향하고 있으니 세월도 많이 흘렀다. 이제는 부모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니 고향을 찾는 사람도 없고 해마다 빈집만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고향을 찾게 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부모님도 고향 친구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지만, 마음만은 늘 고향을 향한다. 그래서 고향이란 결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운명 같은 곳이며 어머니의 품속 같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닌가 싶다.
woman8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