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바라기씨유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여성방송 = 신재원 기자] "최근 들어 식용유 가격이 매주 1달러씩 오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일주일새 10달러나 급등한 적도 있어요."

미국 도넛 체인점 디스트릭트도넛의 사장이 최근 식용유 품귀 사태에 관해 워싱턴포스트(WP)에 전한 하소연이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한 대형 레스토랑 직원은 "식용유 값이 뛰어오른 뒤로 감자튀김을 만들 때 해바라기씨유, 유채씨유 등 이것저것을 섞은 기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선 식용유 패닉바잉 조짐에 팍팍한 민심을 풍자한 SNS 포스팅이 공유되기도 했다. "이웃집이 창문틀에 유채씨유를 놔뒀다. 뻔뻔한 부의 과시로 보여진다. 도둑들의 심기를 자극하지 말라"는 글이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전역의 대형마트들은 고객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식용유 개수를 제한하고 나섰다. 미 브루킹스연구소는 “올 들어 식용유 값은 곡물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바라기씨유가 쏘아올린 식용유 대란

식용유는 종류가 다양해 대체재가 많은 식료품이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2019~2021년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식물성 기름의 비중은 팜유가 58%로 가장 많이 소비됐다. 그 뒤는 대두유 14%, 해바라기씨유 13%, 유채씨유(카놀라유 포함) 7%, 기타 8%(올리브유·땅콩기름 등) 순으로 대동소이하다. 제일 값이 싼 팜유를 제외하고는 많은 식용유들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식용유는 글로벌 공급망에 특히 취약하다는 특징도 있다. 세계 식용유 소비량의 40%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경우 세계 소비량의 20% 가량만이 수입에 기대고 있는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IFPRI는 "국내 식용유 소비량의 절반을 국외에서 조달하는 국가는 75%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수급과 가격 측면에서 식용유들끼리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최근 식용유 대란도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바라기씨유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뉴욕타임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소비량의 각각 50%, 25%를 공급해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느라 해바라기 재배 및 수출량이 급감할 것이란 예측이다. 국제금융공사 고위직 출신 한 독일인은 지난 14일 브루킹스연구소에 식량위기 관련 글을 게재하면서 “몇주째 해바라기씨유를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위기감에 주요 식용유 생산국들은 식용유 수출 제한 조치로 반응했다. '식량 보호주의'를 내세우면서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 팜유 수출금지령을 발동했다. 전 세계 대두유 시장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도 대두 관련 제품의 수출세를 2%포인트 인상해 간접적으로 역외 반출량을 줄이려 했다. 식용유를 둘러싼 불안감이 최근엔 유채씨유 수요 폭발로 이어졌고 유채씨유 가격은 한달새 2배 이상 뛰어올랐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식물성 기름은 공급난에 직면해 있었다. 남미 전역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인해 올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의 대두유 수출량은 전년 대비 5%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최대 유채씨 생산국인 캐나다에서도 연이은 이상기후 탓에 유채씨유 수출량이 20% 감소했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팜유를 많이 생산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계속된 인력 부족 문제와 작년 12월 동남아를 강타한 태풍 라이 등의 영향으로 팜유 원료인 기름야자 수확이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치솟는 식용유 가격. 출처=IFPRI

세계 각국이 바이오디젤 연료 생산을 확대한 것도 식물성 기름의 공급난을 가중시켰다. 바이오디젤은 작물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바이오디젤로 전환되는 식물성 기름은 연간 3100만t이다. 3억2000만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농업시장조사업체 그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식물성 기름 생산량은 연평균 570만t 증가했다. 소비량이 연평균 620만t 늘어난 것에 비해 매년 50만t씩 모자랐다는 분석이다.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존 바페스는 "식물성 기름은 아이스크림에서 샴푸,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안 쓰이는 데가 없는 품목"이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IFPRI는 "전 세계인들은 하루 평균 권장 칼로리의 10% 가량(300kcal)을 식용유에서 보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방글라데시 등 저소득국가에서 필수 식료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식용유 공급 경색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인도네시아가 지난달 팜유 수출을 재개하고, 말레이시아는 코로나19에 의한 국경 봉쇄조치를 최근 해제해 팜유 생산에 투입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