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방송 = 신재원 기자] 지난해 서울에서 전 남친의 스토킹에 시달리던 신변보호대상 여성이 피살된 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이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스마트워치 확대와 즉각대응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맹점이 드러났다"며 구속영장 발부 등을 둘러싼 경찰과 검찰, 법원의 좀 더 적극적인 공조와 협조를 아쉬워했다. 또한 검찰이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범죄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사건으로 판단해 야기된 참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구로에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과거 애인이 휘두른 흉기에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후 도주했던 피의자 조모(56)씨는 15일 오전 10시 52분께 구로구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피해 여성은 지난 11일 서울 양천경찰서에 '조씨가 협박을 하고 있다'며 폭행과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하고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했다. 살해당하기 직전 자신의 위험을 알렸던 스마트워치도 이때 지급받았다.

고소 사실을 안 조씨가 다시 피해자를 찾아와 협박하자 당시 관할서였던 구로경찰서는 조씨를 협박·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고 스토킹과 성폭행 등 여죄를 조사했다. 다음날 오전 4시께 피의자를 유치장에 입감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반려됐다. 이후 피의자 구속영장 재신청을 위해 보강 수사를 벌이던 중 피해자는 참변을 당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스마트워치 작동 등의 문제보다는 정보공유가 안되는 분리된 사법시스템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질타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경찰·검사·법원 셋이 공조를 이뤄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실천해야 하는데 각각의 기관에서 별도로 일을 진행하면 협력 자체가 어렵다"며 "당장 현장출동하는 경찰은 과거 여러 관련 사건을 겪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검찰, 법원의 단계까지 사태의 심각성이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적학과 교수는 "구속신청 단계를 거치면서 영장이 발부된다고 하더라도 하루 이상 걸린다"며 "아침에 영장실질심사까지 진행하면 2~3일씩 더 걸리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하고 재신청하는 사이에 신변보호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제도의 맹점이 보이는 사건이다"며 "검경과 법원 등의 기관들이 공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 협조를 하고 사태의 위험성을 인지했다면 살인사건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는 또한 이번 사건은 경찰과 검찰, 법원이 스토킹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사건으로 판단해 야기된 참변이라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은 "검찰의 입장에서 소명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고 증거 불충분 상태에서 구속판단을 반려한 것은 일밤 범죄를 적용했을 때는 합리적인 사유였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다만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폭력이나 데이트폭력, 스토킹피해 범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통상적인 업무 수준에서 사건을 처리했기 때문에 이번 참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 조사관은 이어 "가해자에 대한 위험성 판단, 살해목적까지 도달했을 수 있다는 판단을 못하는 것이 아직도 위험도 평가를 할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살인은 우발적으로 1분도 안돼 일어나는데 신변보호자에게 스마트워치를 나눠주며 피의자가 접근하면 신고를 하라는 경찰의 지침은 어떻게 보면 효과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